떡잎부터 남달랐던 거장 감독의 영화 ('플란다스의 개')(봉준호 감독/ 이성재, 배두나 주연/)

후노스 리뷰/영화 리뷰|2019. 5. 29. 00:13

몇 번을 보아도 새롭고 재밌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은 처음 한 번 보았을 때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거나 진가를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비유나 상징성을 빼곡히 채운 영화들이 그러한데요, 저는 그런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참 좋아합니다.

영화의 흐름에 따른 이야기 자체의 재미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그 속에 숨겨진 디테일한 비유와 상징들을 발견하고, 그것이 이야기의 메시지와 긴밀하게 역어 있음을 발견할 때 오는 쾌감은 상당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몇 번이고 다시 감상하게 됩니다.

 

그런 저의 취향을 상당히 잘 반영하는 오늘의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첫 작품

 

'플란다스의 개'입니다.

(장르 - 드라마, 코미디/ 2000.02.19. 개봉/ 108분/ 한국/ 12세 관람가)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28267

 

플란다스의 개

조용한 중산층 아파트, 백수와 다름없는 시간강사 고윤주(이성재 분)는 개소리에 괜히 예민해져서 방바...

movie.naver.com

 

주인공 고윤주(이성재)는 30대의 백수입니다. 어느 날,개 짖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게 됩니다. 평소대로 버려도 아무도 안주워갈 슬리퍼에 운동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 분리수거를 하고 터덜거리며 들어오던 중 바로 옆집 문 앞에 서 있는 강아지를 발견합니다. 윤주는 그 개를 납치, 지하실로 뛰기 시작합니다.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지하실에 가둬버립니다.

 

우리의 주인공 백수 고윤주. 


  한편 아파트 경비실엔 경리 직원 박현남(배두나)이 있습니다. 그날도 지루하게 낱말맞추기나 하고 있는 현남에게 꼬마 슬기가 삔돌이(강아지)를 찾는 전단을 가지고 옵니다. 온 동네에 전단을 붙이는 현남. 어쩌면 교수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을 안고 한잔한 윤주. 집에 돌아와 임신한 아내의 배에 대고 속삭이고 있는데,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린다. 급하게 달려 나간 아파트 사방에 강아지 찾는 전단이 붙어있고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특징 : 성대수술로 짖지 못함.

그러나 지하실의 강아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신경질적인 목소리의 주인이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의 강아지임을 알게 된 윤주는 호시탐탐 그 개를 노리는데요...
  점점 늘어가는 강아지 실종사건. 사건이 마구 번져 가는 듯 보이던 어느 날, 친구 장미에게 들른 현남은 망원경을 들고 옥상에 올라갔다가 건너편 옥상에서 한 사내가 개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용감한 시민상을 타서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것이 꿈인 우리의 현남.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습니다. 장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사내를 쫓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희망 박현남.

 

어느 아파트 단지의 개 실종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입니다. 이 이야기 만으로도 충분히 흡입력있는 영화입니다만, 이 영화의 진가는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 영화에는 대한민국의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상징이 정말 가득하기 때문인데요,

 

배울만큼 배운 인텔리이지만 현실에서는 무능한 88만원 세대, 영화 초반과 마지막 시퀀스에서 동일하게 등장하는 숲이라는 배경이 주는 의미, 일자리도 없고 실속 없는 꿈만 꾸지만 아직 순수를 잃지 않은 젊은이, 자기 잇속만 챙기는 부패한 세대, 그저 한 끼 먹고 한잠 잘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그걸로 족하는 노숙자...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2000년대 당시를 살아가던 여러 세대의 모습을 예리하게 짚어냅니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의미를 하나하나 다 풀어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숨겨진 상징을 발견하며 꼭 직접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아파트 지하실에서 밤마다 경비원은 뭘하는걸까?
밥만 준다면 교도소라도 제 발로 들어갈 노숙자.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만, 당시 이 작품으로 봉준호 감독은 '디렉터스 컷 올해의 신인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만큼 작품성으로는 인정을 받았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영화에 지금만큼의 큰 관심을 갖지 못했던 어린 시절,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여러편 보며(그때는 같은 감독의 작품인지도 모르고 봤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다 한 감독의 작품이더라는 경우였습니다.), 영화를 고를 때 왜 감독을 봐야 하는지 처음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선택함에 있어 감독을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기준입니다. (이번에 개봉할 기생충도 정말 기대중입니다. 믿고 보는 감독이기에 걱정은 안 됩니다. 이미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최고의 상을 받은 작품이고, 감독이니까요. 설레는 마음으로 30일, 극장으로 가려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들 가운데 아직 못 보신 분이 계신다면 영화 '플란다스의 개' 강력 추천합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 이야기 자체도 재밌고, 숨겨진 상징들도 매우 좋습니다. 카메라 워킹과 촬영기법도 세련되진 않았지만 아주 시네마틱 합니다.(개인적으로 프랑스 영화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왜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알만한, 뛰어난 첫 데뷔작입니다.

 

 

후노스 별점 - ★★★★☆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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