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리뷰 2부. 줄거리와 결말)(스포일러 주의)

후노스 리뷰/영화 리뷰|2019. 5. 30. 22:37

영화 '기생충' 리뷰 1부에 이어서 2부입니다.

 

1부를 못 보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이용해주세요!

https://whoknowsblog.tistory.com/51

 

"이 시대에는 돈이 다리미야, 구김살을 쫙 펴줘."(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리뷰 1부. 줄거리와 결말)(스포일러 포함!)

드디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평일 낮시간임에도 상영관 내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요, 그만큼 화제의 작품이긴 한가 봅니다.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외에는 굳이 사전 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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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리뷰 1화 다시 보기.)

 

 

(강력한 스포일러를 포함한 리뷰이니 원치 않는 분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읽어주세요!)

 

 

전화를 받아보니 다름 아닌 연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계곡물이 불어 캠핑이 불가능하게 된 박사장 가족이 철수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라는 겁니다. 몸싸움 끝에 문광 부부를 다시 지하실에 가둬버리는 데 성공한 기택 가족. 그러나 박사장 가족이 도착하게 되고, 미처 바깥으로 도망치지는 못하고 충숙을 제외한 나머지는 거실 테이블 아래 몸을 숨깁니다. 하필 오늘따라 거실에서 자겠다는 박사장과 연교.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테이블 아래에서 부부의 대화를 듣게 되는데요, 그때 박사장은 냄새가 난다고 말합니다. 운전기사 김기사 아저씨 몸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거실에서 나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마치 지하철 오랜만에 타면 나는 냄새라고 표현하는 박사장, 지하철을 타본지 너무 오래되어 기억나질 않는다는 연교.(그야말로 소위 다른 공기를 맡으며 산다는 상류층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기택 가족은 크게 긴장했지만, 다행히 박사장과 연교가 집안을 뒤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기택은 자신의 몸에서 정말 냄새가 나는지 옷의 냄새를 맡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슴속에서 모종의 감정이 피어납니다. 그것은 박사장에 대한 분노일 수도, 혹은 자신의 출신성분에 대한 부끄러움일 수도 있습니다.

 

이 사진 속에 사람이 몇명인지 세어보시오.(정답 : 6명.)

 

한편 그때 지하 벙커에서 문광의 남편은 몸이 묶인 채 이마로 전등 스위치를 반복하여 누릅니다. 그 스위치는 거실 계단의 조명과 연결되어있는데요, 알고 보니 수년간 그 벙커에서 박사장이 들어올 때마다 감사 인사를 모스부호로 전달해왔던 겁니다.(정상적인 행동은 아니지만, "저를 먹여주시고 재워주시는 박 사장님, 오늘도 Respect!"를 외치는 그의 모습에서 적어도, 마치 이 곳이 제 집인양 욕심부리는 기택 가족과는 다른 순수함이 보입니다.)하지만 박사장 부부는 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깊이 잠든 박사장 부부를 확인하고 간신히 집에서 도망치는 데 성공한 기택과 기우, 기정.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자신들의 집으로 향하는데요,

 

저런 계단을 몇번이고 내려와 결국 현실의 세계로 돌아와야만 한다.

 

수직적인 카메라 동선으로 계단을 끝없이 반복해서 내려오는 길이 그들의 현실인 반지하 인생의 민낯을 보여주는 듯 굉장히 강렬하고도 씁쓸했습니다. 기우와 기정 역시 그런 씁쓸한 현실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고, 기택은 물난리가 난 집을 치우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기우는 집에서 수석을 챙깁니다. (친구에게서 선물 받았던, 재물을 가져다준다는 수석. 물속에 다른 돌들과 묻혀 있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그 돌이 그럴듯한 거치대 위에 올려놓으면 작품이 되고, 영험한 물건이 됩니다. 단 하루였지만 마치 고급 주택에 살았던 기택 일가의 모습을 보는 듯 카메라에 잡힌 그 수석이 참 허망하고 아이러니컬했습니다.)

 

그날 밤, 수재민 대피소에 누워있는 기택과 기우 기정. 계획이 뭐냐고 묻자 기택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계획해봐야 절대 계획대로 되지를 않거든."

 

기택은 살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습니다. 바로 냄새. 상류층과 자신은 보기에만 다른 것이 아니라, 심지어 냄새조차도 다르다는 진실. 거기서 오는 회한을 읽고, 아들 기우는 아버지에게 죄송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계획이 있다고 말하죠. 가슴에 품은 커다란 돌덩이를 꽉 끌어안고, 자기가 가져온 게 아니라, 그 돌이 자꾸 자기를 따라온다고 말합니다.

다음 날, 너무나 여유로운 아침의 풍경을 보여주는 박사장 가족. 아들의 못다 한 생일 축하를 위해 가든파티를 계획하고 지인들을 부릅니다. 아이들의 개인 교사인 기정과 기우는 물론 운전기사인 기택 까지 총동원시키는 연교. 장을 보러 가는 연교의 수행비서 노릇을 하며, 기택은 그녀의 운전수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토록 밤새 쏟아진 폭우로 재난 대피소에서 악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대비되는 여유로운 연교의 모습, 비가 왕창 쏟아져 미세먼지가 씻겨 내려가 너무 좋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 기택의 냄새를 맡은 듯 창문은 은근슬쩍 내리는 연교의 모습에서 기택의 감정은 점점 더 소용돌이치게 됩니다.

 

인디언 덕후 다솜의 방. 아마 평수가 기택의 반지하 집보다 넓을듯.

 

한편 다혜와 썸을 타는 기우는 마당에서 가든파티를 즐기는 여유로운 상류층 사람들을 바라보며, 다혜에게 자신이 이 공간에 잘 어울리느냐고 묻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다혜. 기우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합니다. 챙겨 온 수석을 들고 지하벙커로 걸어가는 기우. 벙커에 쓰러져있는 문광부터 처리하려는 찰나, 뒤에서 문광의 남편이 기우에게 반격합니다! 결국 돌에 머리를 맞는 것은 기우가 되었고, 마치 아버지 기택의 말이 씨가 된 듯, 늘 그랬던 것처럼 계획은 실패하게 됩니다.

 

그때 박사장은 정원에서 기택과 함께 인디언 분장을 하고 이벤트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연교가 시켰기에, 일 년에 한 번뿐인 날 가정의 평화를 위해 희생한다는 모양이었습니다. 기택은 못마땅하지만 억지웃음을 지으며 "그래도 아내분을 사랑하시기는 하는 모양입니다."라고 하자, 박사장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정색합니다. 선을 넘지 말라는 듯이요. 영화에서 기택은 박사장에게 '아내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총 두 번 합니다. 그때마다 박사장은 불쾌해합니다. 마치 사랑이라는 고결한 영역의 이야기를 내가 왜 당신과 나눠야 하느냐는 듯한 반응이었습니다. 그저 오늘도 일당 받고 일하는 거니, 맡은 바를 다 하기나 하라는 듯 단호히 기택에게 선을 긋습니다. 박사장은 자신과는 삶이 다른 운전기사 기택의 한계를 은근하게 지적하며 철저히 공적인 관계임을 강조하는 겁니다.

 

선을 넘는 것을 극도로 불쾌해 하는 박사장.

 

결국 문광의 남편은 사이코틱한 모습으로 식칼을 손에 쥔 채 거실에서 정원까지 나아갑니다. 그대로 기정의 가슴에 칼을 꽂는 그. 연교의 상류층 지인들은 혼비백산 도망칩니다. 박사장 가족은 아들을 챙기기 정신이 없고, 기택 또한 딸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충숙은 사이코와 몸싸움을 벌이고 그를 제압합니다. 다혜는 어디서 발견했는지 기우를 들쳐 엎고 뛰쳐나갑니다. 

기택이 박사장에게 던진 차키가 하필 사이코의 몸 밑으로 들어가버리고, 박사장은 어쩔 수 없이 쓰러진 싸이코의 몸을 뒤집어 차키를 손에 쥡니다. 그리고 코를 틀어막습니다. 냄새,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말이죠. 그 모습을 본 기택은 결국 눈이 돌아갑니다. 식칼을 들고 그대로 박사장을 찌르는 기택. 그 돌발적인 행동은 분노였을까요, 혹은 부끄러움이었을까요.

 

 

다행히 기우는 목숨을 건졌습니다. 다만 뇌 수술을 받았고, 기정은 안타깝게도 사망했습니다. 충숙은 기우와 함께 재판을 받았고, 전원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기택은 실종되었습니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있을까요.

 

이제 박사장이 살던 그 주택에는 한국 소식에 어두운 외국인이 삽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집을 근처 산에서 그 집을 바라보던 기우의 눈에, 반짝이는 모스부호가 들어옵니다. 그 신호는 아버지 기택의 편지였습니다.기택은 그 집 지하실에 살고 있었던 겁니다.

 

"그날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꿈같다... 그날 깨달았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렇게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가 지하 벙커라는 것을 깨닫고 숨어 들어간 기택은 그곳에서 살아갑니다.

 

기우 역시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합니다.

 

"돈을 많이 벌겠습니다. 아주 많이요. 그리고 돈이 모이면 그 집부터 살게요. 이삿날, 아버지는 계단만 올라오세요."

결국 성공한 기우는 돈을 모아 그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거실에서 만나 포옹하는 부자.

 

하지만 이 장면은 기우의 상상이었고, 진짜 현실은 다시 반지하입니다. 영화의 첫 시작과 같은, 반지하 집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는 장면이 흐르며 그날이 오기까지 건강하시라는, 꼭 가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만을 남깁니다.(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을 연관 짓는 봉준호 감독의 연출이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그렇게 영화는 반지하에서 시작해 반지하로 마무리되며 끝이 납니다.

 

황금 봉려상...아니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

 

영화 전체의 줄거리를 디테일하게 알아봤습니다. 사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서 관객들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에 대한 기대는 좋지만, 핀트가 어긋난 기대를 하는 분들도 꽤 보이는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이 영화를 깎아내리는 평들이 보입니다. 대부분 적절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영화를 깊이 이해하지 못한 혹은 엉뚱한 기준을 갖다 댄 평이라고 생각됩니다.

 

애초에 이 영화는 두 가족이 나오는 드라마 장르의 영화입니다. 감독의 전작인 스케일이 큰 '괴물'이나 '설국열차' 같은 장르도 아니고, 혹은 '살인의 추억' 같은 스릴이 보장된 주제 역시 아닙니다. '마더'처럼 소수의 캐릭터(김혜자)만을 부각해 깊이 있게 파고드는 작품도 아니고 오히려 각각의 배우들이 거의 같은 비율로 고르게 역량을 발휘하는 영화입니다. 그나마 비슷한 부분을 공유하는 영화는 괴물을 들 수 있겠는데, 괴물에서 송강호의 가족 모습과 이 영화에서 기택(역시 송강호) 가족의 빈곤한 모습이 조금 비슷하긴 합니다. 그러나 그저 지금까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와는 꽤 다른, 하지만 어딜 봐도 봉준호 감독의 냄새가 진한 그런 영화였습니다. 단지 두 가족을 만나게 함으로써 빚어지는 상황들로 이토록 유머러스하고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 그리고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가 지금까지 있었을까요?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대단히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두 가족을 통해 우리 한국 사회의 현실을 짚어내는 블랙코미디 영화입니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생각하게끔 하는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 또한 지니고 있습니다. 칸영화제 수상작이라고 해서 꼭 장엄한 주제나 범상치않은 캐릭터,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작품이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겁니다. 다만 신기한 점은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이 작품이 그만큼의 호소력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분명히 한국인이어야 이해가 될 디테일한 지점들이 많은 영화인데, 그것을 놓치고서라도 인정을 받았다는 건 그만큼 이야기 자체가 지닌 호소력이 강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봉 감독은 아마 애초에 그런 부분까지 고려하고서 만들었겠죠?

 

영화 기생충 포스터.

 

영화의 결말은 예정되었다면 예정된 대로 '배드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우의 계획, 약속은 결국 늘 그랬듯이 실패할 것으로 점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기택의 말처럼 늘 계획이라는 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의 현실은 시작부터 끝까지 반지하였습니다. 그런 계획이 하루아침에, 마치 돌덩이로 사람 머리를 후려치듯 빠르게 이루어지길 바라는 건 어리 석인 생각일 겁니다. 태생이 흑수저인 삶이 금수저의 삶으로 진입하는 것이, 이 영화에서 처럼 잠깐의 짧고 굵은 해프닝이 아니고서야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좋은 영화는 늘 절대 악과 절대 선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택의 가족이 서민층에 가깝다고는 하나, 그들이 저지른 엄연한 범죄, 그리고 박사장 가족이 얄미울 정도로 부유하기는 하나 오히려 순수하기도 하고 아무 죄는 없다는 점을 보면 이 영화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기란 어렵습니다. 좋은 영화란 다만 답을 제시하지 않고 그저 상황을 보여줄 뿐인 겁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말할 것 없이 훌륭합니다. 좋았던 점은 어느 뛰어난 배우 한 명의 독주가 아니라 전체적인 고른 참여도가 보여 함께 끌고 가는 힘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습니다. 특히 박사장과 연교를 연기한 이선균과 조여정의 연기가 최고였습니다. 배우 송강호는 늘 보여주던 만큼 노련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충숙 그리고 문광 역을 맡은 배우 장혜진과 이정은 역시 새로운 모습을 보아 좋았습니다. 기우와 기정을 연기한 최우식과 박소담은 정말 남매인 듯 닮았고, 극에 잘 녹아들었습니다. 배우진들의 벨런스가 보기 좋았습니다.

 

이 두 분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 두 분이요...

 

음악감독은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정재일이 맡았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극의 분위기를 현악으로 잘 표현해주어 몰입에 상당히 도움을 주었습니다. 영화의 화질과, 색감도 굉장히 현실감 있게 표현되었고, 소품은 앞서 말했듯이 정말 디테일의 끝판왕이었습니다. 카메라 워킹 역시 대비되는 두 가족의 모습을 다양한 앵글로 잘 표현해주고 있어 좋았습니다.

 

칸영화제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떼어 놓고도,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에겐 꼭 극장에서 관람 하시길 추천드리며, 저는 여러번 반복해서 볼 의향이 있습니다.

 

 

후노스 별점 - ★★★★☆(+0.5) 4.5

 

(PS.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아시나요? 관련 소개글이 보고싶다면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https://whoknowsblog.tistory.com/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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