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승진할라고 선생 했나? 애들 가르칠라고 했지."('땐뽀걸즈'/ 스승의 날 추천 영화)

후노스 리뷰/영화 리뷰|2019. 5. 17. 00:15

 

 

안녕하세요 후노스 영화 리뷰 시간,

 

오늘은 한국 다큐멘터리 작품 하나를 추천할까 합니다.

 

그저께가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소중한 스승이 한분씩을 있으실 텐데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이럴 때 연락도 하고 해야 하는 건데, 이 인간이 아직 부족해서 미처 그러지도 못하고 지나가 버렸네요.

 

대신 우리의 고교시절을 추억하고, 그리웠던 스승을 다시금 떠올려보기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한 편 봤습니다.

 

이승문 감독,

 

이규호 선생님, 박시영, 김현빈, 박혜영, 김효인, 심예진, 이현희, 배은정 양이 출연한

 

'땐뽀걸즈' 입니다.

(장르 - 다큐멘터리/ 2017.09.27. 개봉/ 85분/ 한국/ 12세 관람가)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67107

 

땐뽀걸즈

성적은 '9등급'이지만, '땐'스 스'뽀'츠는 잘하고 싶다! 구조조정이 시작된 조선소에 취업을 준비하는 ...

movie.naver.com

 

이 작품은 실제 거제여상에 재학 중인 학생들과 선생님이 출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고, 실화를 이길 수 있는 픽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실화 그 자체인 다큐멘터리 작품에 대해 가졌던 저의 편견도 점점 사라져 가는 요즘입니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간결합니다. 거제여상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땐뽀반'(댄스 스포츠 반)에서 연습을 하고, 대회에 출전하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리고, 평범한 여고생들이라 할지라도 저마다 삶의 문제들은 그리 간결하지가 않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땐뽀걸즈'의 배경인 거제도. 

 

배경인 거제도는 급속도로 발전하여 한때 세계 조선업의 수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으나, 현재 조선소들의 사정이 좋지 않아 지역 전체의 경기 침체가 심각합니다. 저 역시 거제도는 아니지만 경상도 출신이고, 당시 거제도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기업에서 정리 해고되는 일은 물론, 자영업자분들까지도 매출이 갈수록 줄어 어려움이 많은 줄로 압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실제 거주하시는 분들의 체감으로는 경기가 회복되는 기미가 아직 보이질 않는다고 합니다.

 

제가 어릴 때, 초등학교를 가기도 전에 IMF가 터졌고, 당시 저는 어려서 사정을 잘 몰랐지만, 저의 부모님 역시 회사에 출근을 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전전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경제와 사회가 어려워지고, 국가 혹은 지역이 흔들리면 그 파장은 가장 연약하고 낮은 곳까지 미치기 마련입니다.

 

거제여상에 다니는 여고생들도 그 여파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한 학생의 아버지는 창업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가게 되어 딸과 몇 달간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아버지는 거제에서 창업을 해야 할지, 다시 원래 살던 부산으로 가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그에 따라 자연히 자식들의 거취도 결정되겠지요. 안타깝지만 이렇게 힘든 상황들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곳이 지금 거제도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고교시절은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시기입니까. 이 작품에서도 '여고생은 여고생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끔 그 나이 때 맞는 모습과 천진함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좋았습니다. 특히 남성이나, 기성세대의 시선으로 필터링되지 않은, 때로는 욕도 하고, 술 담배도 하고, 싸우기도, 울며 화해하기도 하는 진짜 '여자 고등학생'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냈습니다. 사실 그 자체로도 이 작품은 한국 영화계에 모범적인 사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리얼한 고등학생의 모습이다.

 

(죽지도 않고 돌아온 TMI 시간.)

저도 고등학교 때 통기타 연주 동아리 활동을 하며 학교 축제를 위해 1년간 열심히 준비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당시 저희 동아리는 담당 지도 선생님이 계시긴 했지만, 기타를 전혀 다루지 못하시는 분이셨기에, 실질적인 축제 준비와 연습과정은 제가 도맡았던 기억이 납니다. 기타를 전혀 쳐 본 적 없는 친구들을 모아서 하나의 연주곡을 익히도록 돕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어서 기타를 구입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남는 기타를 빌려주기도 했고요, 악보를 다룰 줄 아는 사람도 물론 없었기에 일일이 악보를 만들고 프린트해서 나눠줬습니다. 다 같이 모아놓고 연습시키기란 또 어찌나 어려운지...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동아리는 축제에서 무대를 무사히 마치고 당당히 입상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경험이 있다 보니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며 추억에 젖어드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이 시대의 참 교육자이신 이규호 선생님.

 

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역시 이규호 선생님이신데요, 횟집에서 동료 교직원과 함께 술을 마시며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동료 교직원이 승진에 대해서 묻자, 이규호 선생님은

 

"우리가 승진할라고 선생 했나? 애들 가르칠라고 선생 했지. 애들이 무사히 졸업하게끔 인도하는 게 우리 사명이야."

 

라고 답하십니다. 정말 세상에는 아직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어떤 권위주의적 모습도 없이, 어리디 어린 학생들과 허물없이 지내며 때로는 말 못 할 고민도 들어주고, 가슴으로 소통하는 모습에서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녀들의 앞날을 응원한다. 물론 선생님도...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을 시작했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마음이 뭉클해져서 눈시울이 붉어지기까지 했습니다. 앞으로는 다큐멘터리 작품에도 편견을 갖지 말고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반성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소스를 그대로 가져와서 드라마도 제작된 모양인데 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 작품도 봐야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마 이 다큐를 훨씬 마음에 들어할 것 같습니다.

 

완성도 높은, 감동적인 성장 드라마를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때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것이 우리 삶입니다.

 

 

 

후노스 별점 - ★★★★☆(+0.5)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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